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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랩퍼 Nas의 1집 <illmatic>은 힙합 역사상 가장 뛰어난 앨범 중에 하나로 가히 무시무시한 가사와 비트가 집대성된 괴물같은 데뷔작이다. 뒤이어 발매되는 앨범들은 계속해서 <illmatic> 과 비교되며 그 개인에게는 꼬리표처럼 따라오는 비운의 앨범이기도 할 것이다. 사실 무언가에 홀린듯한 포스를 가진 그 엄청난 데뷔앨범의 퀄리티를 뛰어넘는다는 일은 그에게 혹독한 과제이자, 안개로 가득찬 미궁의 길을 가라고 등 떠미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Nas 는 꽤나 준수한 완성도의 앨범들을 내기 위해 허슬하는 중이며 다행히 비평가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종종 받기도 한다. 이처럼 본인이 갖고 있는 힘을 넘어 어떤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의 힘으로 예상 밖에 월등한 결과물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그런 힘이 영화감독의 데뷔작에서도 뿜어져 나왔다면 그의 후속작들 역시 평생 그 작품과 비교되며 꼬리처럼 달라 붙을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류승완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나 뿐만 아니라 영화계에 거의 센세이셔널에 가까운 충격을 선사한 독립영화다. 없다시피한 자본으로 일궈낸 감독의 열정이 빛나는 작품이며, 투박하지만 그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영화다. 그러나 그 이후 <피도 눈물도 없이>를 시작으로 <아라한 장풍대작전>, 심지어 평단의 극찬을 받은 <주먹이 운다>도 개인적으로는 다소 실망스러웠던 작품들이다. 언제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보여준 그 신비롭고 묵직한 포스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을까 하는 나를 보며 그의 명데뷔작이 오히려 안타깝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일말의 화려한 수식없이 오로지 정통 액션에 올인했다는 <짝패>. 전문 연기자가 아닌 대한민국에서 액션 하나만큼은 최상위권일 정두홍과 열정의 류승완 본인이 감독과 주연을 모두 맡았다. 앞서 말한 작품들과 달리 오랫동안 갈망하던, 지극히도 류승완스러운 영화를 본 것 같아 뿌듯하다. 곳곳에서 타란티노라든지 드팔마라든지 외국 감독들의 스타일이 차용된 듯한 느낌도 조금은 보였지만 전체적으로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류승완의 열의가 전해지는 듯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투박하고 거친 편집이지만 재치가 넘치고 뜨거움이 꿈틀댄다. 나미의 "영원한 친구"가 bgm으로 깔리는 회상씬에선 온갖 아드레날린이 마구 솟구친다. 씁쓸한 엔딩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느껴진 '허무하지 않은 허무함'도 전해졌다.

 

앞서 조금 말했지만 류승완 감독은 영화에 대한 열정이 눈에 떡 하고 보여서 좋다. 홍콩을 넘어 액션 하나로 세계를 평정한 배우 성룡 키드로서의 그의 리얼한 액션에 대한 갈망은 중반 100:2 결투를 비롯, 온당정 계단에서 대역없이 굴러 떨어지는  장면까지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이 젊고 싱싱한 패기를 누가  아이 셋 딸린 아저씨로 볼 수 있을까. 다른 지저분한 수식은 최소한으로 생략하며 본인이 잘 하는것과 보여주고자 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러한 생략 속에서도 할 말은 다 하고 보여줄건 다 보여주니 안 좋아할수 있나. 최근작 <모가디슈> 까지 이제 류승완은 한국에서 빼놓지 말아야할 영화감독으로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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