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제작비 180억원에 (마케팅비만 40억이라지만) 육박하는 한국 최대제작비의 스케일로 제작 전부터 숱한 기대를 모은 <태풍>. 초흥행작 <친구>의 곽경택 감독과 장동건, 이정재, 이미연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화제였던 그 작품, 개봉 전부터 열기가 대단했다.
과연 물량공세가 엄청난 작품이다. 당시 언론에서 띄어주는 꼴이 그야말로 대단했고 스크린수 520여개를 확보하며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가 갖고 있는 1200만 관객 기록을 넘겠다는 일념으로 거의 발버둥에 가까운 물량공세를 퍼부었다. 그러나 <태풍>은 1200만 관객 운운한 관계자의 그런 발언을 비웃게 만드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그간 한국영화사에 수 많은 작품들이 거쳐왔듯이 <태풍> 역시 남북간의 갈등을 큰 축으로 다루고 있다. 남북을 주제로 한 대표적인 흥행작 <웰컴 투 동막골>은 남북문제에 대한 평화적 메세지를 따뜻하게 잘 포장해 접근한 수작이지만, <태풍>이 남북문제 접근하는 방식은 굉장히 표면적이고 깊지 않다. 두 주인공이 갑작스레 '다음 세상에선 친구하자'며 우정이 미화되는 순간엔 이 영화가 도무지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건지 모르게 한다. 총격 액션 시퀀스에는 감독의 색깔을 찾을 수 없고 핸드헬드 카메라 워킹은 현실감을 증폭하기 보다는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일 뿐이다. 180억원이라는 제작비가 무색한 CG 효과에서는 참담한 실소가 터진다.
장동건이 내뿜는 카리스마는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최대 무기이자 최고의 수확이다. <친구>, <태극기 휘날리며>에 이은 마초적 캐릭터의 결정판이라 할 정도로 선 굵은 연기를 선보인다. 이정재 역시 군인 정신으로 똘똘 뭉친 장교 역할을 맡아 젠틀함의 경지가 무엇인지 보여주며 조연 이미연의 연기도 발군이다. 엄청난 개런티로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긁어갔을 배우들의 연기에 실망할 부분은 없지만 <친구>, <똥개>같은 소박하고 구수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곽경택 감독은 이런 큰 영화에서의 능력 부재를 여실히 보이며 블록버스터와는 거리가 먼 내공임을 확인시켜 준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역사에 기리남을 대작 한 번 만들어보자'는 굳은 의지로 시작된 프로젝트일텐데 할리우드 B급 액션무비에 지나지 않을 영화가 탄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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